음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중고로 ADAM T5V를 샀다. 판매자 집에서 들었을 때 소리가 정말 좋았다. 선명하고, 단단하고, 저음도 깔끔했다. 바로 결제하고 집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내 방에서 틀었더니, 그 소리가 안 났다.
저음은 뭉개지고, 중역은 어딘가 텅 비어 있고, 전체적으로 답답했다. 분명 같은 스피커인데. 접지 문제인가? 스피커 세팅의 문제? 아니면 내 DAC가 문제인가?
아니었다. 스피커는 똑같았다. 문제는 방이었다.
왜곡은 어디서 오는가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장비, 압축된 음원, 또는 케이블을 의심한다. 과거에는 그게 맞았다. 장비 성능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오디오 장비의 성능은 놀랍다. 고급 DAC의 왜곡률은 0.001% 이하다. 앰프는 0.01% 수준이다. 스피커는 볼륨과 주파수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0.5~2% 내외다. 사실상 투명한 수준이다.
그런데 방은 다르다. 처리되지 않은 일반 방에서 주파수 응답을 측정하면 10~15dB의 편차가 흔하게 나타난다. 심한 경우 20dB 이상. 20dB는 10배의 음압 차이다. 장비의 왜곡률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다.
레벨의 왜곡과 시간의 왜곡
방이 만드는 왜곡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레벨의 왜곡이다. 특정 주파수가 비정상적으로 크거나 작게 들리는 현상이다. 주된 원인은 정재파(standing wave)다. 평행한 벽 사이에서 특정 주파수가 공명한다. 방의 길이가 3.4m라면 약 50Hz와 그 배수(100Hz, 150Hz...)에서 공명이 생긴다. 이 주파수들은 방 안 특정 위치에서 크게 증폭되고, 다른 위치에서는 거의 사라진다. 같은 시스템인데 청취 위치를 15~30cm만 옮겨도 저음 레벨이 수 dB 변한다.
둘째, 시간의 왜곡이다. 소리는 스피커에서 직접 귀로 오기도 하지만, 벽에 반사되어 약간 늦게 도착하기도 한다. 이 시간차가 문제를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SBIR(Speaker Boundary Interference Response)이다. 스피커에서 직접 나온 소리와 뒤쪽 벽에서 반사된 소리가 간섭을 일으킨다. 스피커가 벽에서 60cm 떨어져 있다면, 약 280Hz 근처에서 직접음과 반사음이 정확히 역위상으로 만나 상쇄된다. 주파수 응답 그래프가 빗살처럼 울퉁불퉁해지는 콤필터링(comb filtering) 현상이다.
또 하나는 플러터 에코(flutter echo)다. 평행한 두 벽 사이를 소리가 빠르게 왕복하면서 생긴다. 손뼉을 쳤을 때 "찌이잉" 하는 금속성 울림이 들린다면 플러터 에코가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방 크기에서는 초당 수십 회 반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분리된 에코가 아니라 연속적인 톤처럼 들린다.
EQ로 고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EQ나 DSP로 보정하면 되지 않을까?
레벨의 왜곡은 피크와 딥으로 나뉜다. 특정 주파수가 과하게 큰 피크는 EQ로 잡을 수 있다. 정재파에 의한 공명은 minimum phase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레벨을 낮추면 위상과 울림도 함께 개선된다.
하지만 특정 주파수가 사라지는 딥은 다르다. 딥은 직접음과 반사음이 시간차를 두고 합쳐지면서 상쇄되는 현상이다. 두 신호의 합은 non-minimum phase가 되기 쉽다. EQ로 그 주파수를 올려봤자 직접음과 반사음이 둘 다 올라갈 뿐, 상쇄 조건은 그대로다.
시간의 왜곡은 더 심하다. SBIR은 단일 주파수가 아니라 여러 주파수에서 동시에 딥을 만든다. 주파수 응답이 빗살처럼 울퉁불퉁해지는 이유다. 플러터 에코는 중고역의 명료도를 전체적으로 흐린다. 둘 다 시간차가 원인이므로, 레벨을 만지는 EQ로는 손댈 수가 없다.
| 레벨 왜곡 | 시간 왜곡 | |
|---|---|---|
| 원인 | 정재파 (룸 모드) | 반사음 간섭 (SBIR, 플러터 에코) |
| 현상 | 특정 주파수가 크거나 작음 | 직접음과 반사음의 상쇄/강화 |
| EQ 보정 | 부분적으로 가능 | 불가능 |
| 해결책 | 베이스 트랩, 청취 위치 조정 | 흡음재, 확산재, 벽 각도 설계 |
시간 왜곡을 해결하려면 물리적으로 방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측정이 필요한 이유
귀로 들어봤을 때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
리스닝 룸이라면 그렇다. 듣기 좋게 만들면 된다. 레벨 왜곡이 있어도, 시간 왜곡이 있어도, 본인이 만족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스튜디오는 다르다. 정확한 모니터링이 목적이다.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는 미세한 차이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믹싱 스튜디오에서는 모든 주파수 대역이 평탄하게 들려야 한다. 스피커 제조사들이 무향실에서 측정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라. 방의 영향을 제거해야만 스피커 본연의 성능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간의 청각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다. 나쁜 방에서 오래 작업하면 그 소리에 익숙해진다. 본인은 괜찮다고 느끼지만, 다른 환경에서 재생하면 문제가 드러난다.
그래서 측정이 필요하다. 주파수 응답만으로는 부족하다. Waterfall Plot을 보면 특정 주파수가 얼마나 오래 울리는지 알 수 있다. 잔향시간(RT60)은 방 전체의 울림을 보여준다. 임펄스 응답은 반사음의 도착 시간과 강도를 드러낸다.
장비보다 방이 먼저다
오디오 커뮤니티에서는 케이블, DAC, 앰프의 미세한 차이를 논쟁한다. 100만원짜리 DAC와 500만원짜리 DAC의 차이를 귀로 구분할 수 있는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
그런데 그 차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잘 만들어진 DAC끼리의 차이는 기껏해야 1dB 미만이다. 방이 만드는 레벨 왜곡은 10~20dB다. 여기까지는 EQ로 어느 정도 보정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시간 왜곡은? SBIR이 만드는 콤필터링, 플러터 에코가 만드는 울림. 이건 EQ를 아무리 만져도 그대로다.
500만원짜리 DAC를 사기 전에, 먼저 손뼉을 쳐보라. "찌이잉" 하는 금속성 울림이 들리는가? 그렇다면 그 500만원은 방에 쓰는 게 더 나은 가성비를 보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모니터 스피커도 처리되지 않은 방에서는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반대로 제대로 설계된 방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의 장비로도 놀라운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정확한 모니터링이 가능하고, 믹스가 다른 환경에서도 일관되게 들린다.
스튜디오를 만들 때 장비 예산부터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순서가 반대다. 먼저 방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장비의 진짜 성능을 들을 수 있다.



